신에게 사랑받지 못한남자, 이해고
신에게 사랑받지 못한남자, 이해고
'어머니의 나라'
- 대조영 OST
일전에 제작한 '어머니의 나라' 뮤직비디오이다.
웅장함과 애틋함, 이 두가지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의 나라'의 최대단점은 뭐니뭐니해도 '늘어지는 지루함'이다. 음악이 이런데 영상까지 늘어졌다가는 지루하고 졸린 영상이 될 것이 뻔했기에 보다 박진감 넘치는 전투씬을 많이 배치했으며 컷의 세분화로 최대한 지루하지 않은 영상을 담으려 노력했다. 또한 가사와 영상과의 매치, 웅장함과 애틋함에 어울리는 장면의 배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제작기간은 5달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 여름 이 노래를 처음 접하고서부터 MP3의 노래를 담아 들으면서 이미지트레이닝을 셀 수 없이 해왔다. 물론, 당시엔 프리미어(영상제작 프로그램)를 다루지도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대조영이 빈손의 노예에서 많은 유민들과 수만대군을 지닌 전사가 되었을때야 비로소 이미지트레닝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요컨데, 드라마의 진도와 함께 조금씩 손보면서 완성시켜나간 영상이라는 것이다.
긴 시간동안 머릿속에 떠올리며 완성시켜 나갔기에, 애착이 많이 가는 영상이다.
한성별곡 매드무비입니다.^^
사야가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일본장수. 임진왜란 때 1군 선봉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의 좌선봉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그때 나의 21살로 3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부산에 상륙했다. 선조25년 4월 13일이었다. 상륙한 지 일주일 만에 경상좌우병사 김응서에게 은밀하게 글을 보냈다.
"내가 비겁하고 못난 것도 아니고 내 군대가 약하지도 않다. 조선의 문화가 일본보다 발달했고,
학문과 도덕을 숭상하는 군자의 나라를 짓밟을 수 없다. 그래서 귀순하고 싶다."
는 내용이었다.
이렇게하여 우리나라에 귀화해 장수가 된 그는 부산, 경주, 영천등에 포진하고 있던 왜군을 무찔렀다. 또 우리군대에 화포와 조총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왜군이 점령하고 있던 18개의 성을 되찾는 공을 세웠다.
그의 무공과 충절에 감복한 선조는 친히 불러 김해 김씨라는 성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서른 살 때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결혼하여 경상도 달성군 우록에 터를 잡아 살게 되었다.
선조 36년 여진족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내방소를 설치하고 그에게 북방 경비를 맡겼다. 그 뒤 병자호란이 일어나 자신이 10년 간 지켰던 북쪽 땅이 짓밟혔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창의했다.
그때 나이 66세, 의병을 남한산성으로 달려가던 중 조정에서 항복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자 "예의의 나라 군신으로서 어찌 오랑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겠는가, 춘추의 대의도 끝났구나."하고 땅을 치며 통곡했다고 한다. 72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지증추부사,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호는 모하당, 상호군 경원, 부호군 계인의 아버지, 선전관 진명의 조부
(출처 : '김충선의 출생및 업적,, 부탁 드려요,,' - 네이버 지식iN)







배우분들로 인해 다시 봤는데 그냥 좋더라구요;
그래도 뭐 처음에 초린 찾을 때나, 화 난 표정은 공민왕이 떠올랐고 중간에 안 봐서 뭐라고 하진 못 하겠네요.
덧 - 아무리 그래도 하룻 밤 사이 20만 궤멸은 좀… 이해고 스스로 "대조영을 상대할 것은 나 밖에 없다." 라고 했는데 너무 처참하더군요-_-;;
잘봤습니다..... 네이버 블로그로 담아갈게요^^;;